<고난주간 묵상 - 화>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
- 해군기지건설로 인한 제주 강정마을의 아픔을 기억하며
★ 성서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에 띠를 삼는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11장 2-9절)
★ 본문
'구럼비 바위'를 기억하시나요? 정부가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제주 강정마을 바다 앞에 신비로이 자리잡고 있던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여 산산조각 낸 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입니다. 그 처참했던 사건 전후로 강정마을에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앞섭니다, 1900여명이 살던 작은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에 반대해 싸움을 시작한 지가 어느덧 8년입니다. 이것이 단지 작은 마을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보존의 문제이고, 한반도 평화의 문제임을 인식한 사람들이 강정마을로 들어와 함께 싸움을 이어나갔지요. 전국에서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원하는 이들이 강정마을에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강정은 세계적인 평화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싸움의 시간은 길고도 치열했습니다. 2011년 9월, 구럼비 바닷가로 향하는 길목에 펜스가 쳐지고 육지에서 경찰들이 내려와 진압작전을 펼치던 광경. 2012년 3월 7일 구럼비 바위 발파가 시작되며 마을의 모든 입구가 막인 채 육,해상 공사가 진행되던 그 처참한 모습, 마을을 지키고자 온 몸으로 저항하던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당하고 끌려나가던 모습들. 어찌보면 절망적인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끝까지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주민들과 연대하여 저항을 계속하고, 정부에 탄원하고, 약속이행을 요청하고 있으나, 정부는 들은 체도 않고 더 강경해질 뿐입니다.
올해 1월 말에 있었던 행정대집행은, 강정마을의 문제가 현재진행형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주민 동의 없이 군 관사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무색하게, 마을을 고립시킨 후 급작스럽게 군 관사 건설을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벌금을 물려 물질적인 고통까지 더하고 있습니다.
강정마을 싸움은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미 해군기지 건설이 많이 진행된 상황에 더 이상의 저항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허나 이것은 강정마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하나가 들어온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군 수용시설, 무기창고, 유흥시설 등이 연달아 들어온다는 것이고 한 마을을 넘어 제주도의 상당부분이 군 기지화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넓게는 강정마을의 투쟁은 앞서 언급했던 한반도 평화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투쟁은 평화를 위한 저항의 상징으로써 우리가 끝까지 기억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이사야의 환상입니다. 이사야는 애굽과 앗시리아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늘 생존의 위협을 받던 나라의 운명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전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평화의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몸에 띠를 삼는 이'가 통치하는 세상에서 모든 폭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뒤엉켜 눈을 마주치며 놀이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감응한 자가 만드는 세상의 모습은 '평화'입니다. '강한 군대가 우리를 지킬 수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해 힘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논리는 그럴듯해 보이나 결코 옳지 않습니다. 상대를 제압하는 폭력적 힘으로 평화를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힘으로만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힘과 폭력의 신'을 섬기는 이들이나 할 말이지, 그리스도인의 말이 아닙니다.
★ 기도
하나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평화를 일구어가기 보다는 힘과 폭력, 대립을 택하곤 합니다. 그로 인해 한반도가 분단된지 70년이 되었고, 세계 곳곳에 테러가 자행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땅의 아픔 역시 그대로입니다. 평화의 하나님, 전쟁과 폭력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치유하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예수께서 고난받은 이유가 제국의 폭력에 희생된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그것에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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