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일상잡다

예배공동체 고함 37th. 종교개혁 세미나 "주제파악"

by Ivyueun 2015. 10. 28.


종교개혁 주간이다. 

사실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기독교 = 종교'였던 세계에서는 기독교 개혁이 곧 종교개혁이었으나, 한국과 같이 종교가 다양한 세계에서 '종교개혁'은 대체 뭘 의미한단 말인가. 아무리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단어라고 해도, 우리 세계에 맞지 않는 단어라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단어, 언어로 인해 생각의 틀이 고정되니까, 언어를 바꿔주는 것이 인식의 틀을 깨는 첫 걸음일텐데...기독교 개혁 운동, 프로테스탄트 운동 정도로 단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그런 고민을 안고 종교개혁 세미나를 진행했다. 작년에도 예배공동체 고함에서 종교개혁 기념 예배를 드렸는데, 일년이 참 빨리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지난 500여년간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매 년마다 종교개혁을 기념했을텐데, 기념일이 무색하게 그 본래 정신에서 어쩜 이렇게나 멀어져 왔는지 한탄스럽기도 했다.


<기독교 사상> 前 편집장인 홍승표 목사님의 강의가 인상깊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한국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이야기해주셨다. 

1.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프로테스탄티즘은 곧 반가톨릭시즘이었다. 이미 200여년 전에 선교를 시작하여 뿌리내린 가톨릭과 차별성을 갖기 위하여 선교사들은 '트라이앵글 메소드'를 사용한다. 선교를 하는곳에 교회와 학교, 병원을 같이 설립하는 방법이다. 단지 교리를 전할 뿐 아니라 나라를 계몽하고 구휼하는 것이 개신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복음주의'라고 칭하는데, 이것은 제도와 교회를 중시하는 가톨릭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하여 한국에 각기 교단별로 들어와 있었던 개신교 선교사들은 '복음주의 선교사'라는 정체성 아래 함께 모여 선교 정책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본국에서는 갈라져있던 남감리회와 북감리회가 조선에서 연합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척박한 선교지에서는 서로 분열하는 것이 의미없음을 더 빨리 깨닫게 되는듯. 결국 반가톨릭시즘도 극복하고 '복음'이라는 대 명제로 서로를 용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 프로테스탄티즘의 본질인 철저한 자기 회개와, 복음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은 조선 민중들에게 들어와 '청년 정신'으로 부활한다. 이들은 복음을 만나 회개하고 그동안 쌓여왔던 구습을 타파하는 운동을 전개하며, 인간성을 훼손하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각종 운동을 펼쳐 나간다. 펄떡이며 살아 움직이는 청년들. 

3.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교회는 국가주의에 함몰되었으며, 해방이 되어서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곧 교회이며 통치자를 곧 하나님으로 여기는 변질된 기독교. 이 변질된 모습을 제대로 반성하거나 참회하지 않은 채 권력에 빌붙어서 받아낸 떡고물들을 여전히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써온 것이 현재 한국 개신교의 비극적 모습이다.

4. 결국 종교개혁 정신 (프로테스탄티즘)은 끊임없이 회개하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계속 리마인드 시키는 것. 누군가 잘못을 범했을 때 '요즘 안그런 사람이 어딨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자들이 되는 것.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작금의 한국교회는 너무 멀리 왔다...결국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려면 소수종파가 될 수밖에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개혁, 요원한 이름이여. 


'diary > 일상잡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브릭얀 발매트 뜨기  (0) 2016.11.09
장기수백서 2.0 집필위원 회의  (0) 2015.10.29
어느 가을 토요일, 서오능  (0) 2015.10.18
나 이제 집에가  (0) 2015.09.02
뮤지컬 보러 가는 길  (0) 201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