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지음, [바리데기], 도서출판 창비
나는 그동안 황석영을 모르고 살았다.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그에 관한 사실 나부랭이와 루머들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몰랐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낳은 작품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도 의아하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어떻게 황석영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으면서 그의 작품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바리데기]는 놀라운 작품이다. 이 한 권만 봐도 작가의 깊이와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한 숨에 다 읽고나서 황석영의 모든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런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은 삶의 본질과 닿아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제기된다. 삶의 의미? 뒤집으면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라고도 물을 수 있겠다. 소설의 주인공 바리가 세상 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질문들이다. 우리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이냐, 나의 괴로움의 이유는 무엇이냐, 알려다오, 알려다오.
'온 세상 사람들 수테 만났갔구나?
베라벨 사람을 다 만나서.
바리 너 모르구 있댄? 나가 옛말하문서 갈체주었잰이. 너 가는 길에 부탁하는 사람덜 많이 만난다구. 제 괴로움이 무엇 때문인지 자꾸 물었지비.
응, 바리 공주님이 저승 가서 알아가주구 오갔다고 기랬대서.
오라, 기러니까디 대답을 준비해둬야 하갔구나.
저승을 가야 알지.
거저 살다보문 대답이 다 나오게 돼 이서.
말 다르구, 생김새 다르구, 사는 데가 다른데두?
거럼, 세상이나 한 사람이나 다 같다. 모자라구 병들구 미욱하고 욕심 많구.
가엽지.(204)'
저승을 가야 아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대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바리는 자신의 고향인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 영국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숱한 사람을 만나며 삶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살아낸다. 설화 속 바리공주는 그토록 찾던 생명수가 자신이 늘 밥짓고 빨래하던 물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허무한 것이었을까? 바리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고 온 세상을 구원할 생명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절망 그 자체였을까?
'바리야, 기건 아니란다.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을 얻었지비.(81)'
생명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비로소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었다. 우리의 고통은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며, 세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여도 이승의 정의란 늘 반쪽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신은 절망에 함께 하지 않는다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희망을 버려선 안된다고. 희망, 희망이라.
희망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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