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권진욱 옮김, 한문화.
책을 선물받는 것이 좋다. 책 읽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선물한 사람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나를 생각하고, 직관하고, 책을 골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선물받는 것 자체는 좋으나, 책을 훑어본 뒤 늘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책을 보라고 할 수가 있지?",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하는건가?" 등등 화가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 맞는 책을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선물한 사람과 내가 깊은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북극에 있고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다 해도 말이다.
희수언니가 선물해 준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그런 책이다. 책 자체가 나를 흥분하게 하지는 않았다. 책 표지에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이라고 써있지만, 그 '방법론'이라는 것 자체가 별로 흥미로운 부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조금 지나서 다시 읽으면 더 깊은 맛이 배어나올 것이라는 확신은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책인 것도 사실이고. 나에게 필요한 책! 그래, 그 부분이다. 내가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의 필요를 누군가가 채워주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니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런고로, 희수언니가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었다는 것 자체가 나를 흥분하게 했다.
그래서 읽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무엇일지는 궁금했으므로. 그리고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에게 선물해준 언니처럼 나도 그렇게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
저자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카타기리 선사이다. 머릿말에 쓰여있던 그와의 대화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뭣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12)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는 늘 펜을 들고 종이에 끄적이곤 했다. 요즈음은 아이패드를 켠다. 하지만 대단한 글을 쓰고픈 열망은 없다. 단지 이것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에 계속할 뿐이다. 그런데 글쓰기가 영성수련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물에 발을 잠시 담갔다 빼는 것이 아니라, 그 물에 내 몸을 던져넣으면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던, 춤을 추던, 무엇을 하던 거기에 몰입하게 되면 그것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까? 물론 나 자신이 행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도록 균형을 잡는 것과,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또, 육상 선수들은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도 달리는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쉬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뜨거운 열망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열망은 절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31)'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 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125)'
저자가 글을 쓰기 위한 여러가지 조언들을 우리에게 해주었는데, 이것은 비단 글을 쓰는 것 뿐 아니라 삶의 태도 전반에 관련이 있다. 무엇을 배우려고 할 때, 시도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 대면하기 보다는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니까. 무력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 좋아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었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서 쓸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고독한 글쓰기에 전념하기보다는, 친구와 멋진 식당에 앉아 인간의 인내심에 대해 토론하거나 글쓰기의 고통을 위로해 줄 상대를 찾아가는 데 마음이 이끌리게 마련이다......우리는 글이 안써질 때도 무조건 계속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두려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53, 55)'
'진실은 아주 간단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64)'
다음은 글을 쓸 때 내가 참고해보고자 하는 것들. 1.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강박증은 곧 큰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것을 글의 소재로 사용해보자. 2. 자유롭게 마음껏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과 작품 사이에 균형감을 잃지는 말자. 이것은 내가 하는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 세상 모든 삶이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자. 내 책상 위에 있던 돼지 저금통 두 마리, '로스'와 '구이'가 떠오른다. 이름을 붙여줄 때 의미가 피어난다. 4. 명확하게 표현하라.
'바로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을 괴롭히던 강박증에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 부어 보라.....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내야 한다. 쓸데없이 술에 취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말라. (79, 81)'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방황한다면, 독자 역시 방황하게 된다. (103)'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121)'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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