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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내 인생의 카이로스 (감신 총동문회 문집)

by Ivyueun 2013. 1. 21.

감신대 125주년 기념문집, [내 인생의 카이로스], 감리교신학대학교 총동문회 (2012)



담임목사님이 총동문회장이었던 관계로 이 책의 기획과 출판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꽤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은 그때도 했었지만 막상 책을 받아들고서는 쓱 훑어보기만 했을 뿐 제대로 들고보지 않았다. 출판된지 일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야 이 책을 읽은 이유가 있다. 얼핏 스치면서 읽었던 방송국 선배의 글이 요즈음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선배가 했던 고백이 나에게 이a정표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기면서, 이왕 펼친 거 다른 이들의 글까지 한 숨에 읽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선배들의 이야기는 다 도움이 된다. 본받을 점도 많고 반면교사로 삼을 점도 많다.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가 한 곳에 모였다는 것 자체로 의미 깊다고 본다. 학교에서든 교회 현장에서든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가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보고싶다. 다양성 속의 조화! 그것이 감신 정신이라고 들어왔는데....., 현실은 씁쓸하다.

인상 깊은 것은, 유독 한 사람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변선환'이라는 이름이다. 내 선생님의 선생님이신 그 분은 대체 어떤 분이셨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일까. 나도 그 분처럼 열정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건 베드로가 나에게 했던 얘기가 아니냐. 베드로의 얘기 말고 나는 너의 얘기가 듣고 싶다! 너에게 나는 누구냐."(중략) 그제야 비로소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이 왜 각각 달랐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적 깊이에 따라 하나님을 다르게 체험했던 것이다. (중략) 결국 나는 두려움으로서든, 사랑으로서든, 하나님을 체험한 적이 없었기에 그분을 향한 고백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남들의 고백만 열심히 외우고 주석을 붙이고 설명하기에 바빴던 것이다.(*김종률, 446쪽)

- 이 책을 읽게 만든 선배의 글. 


내가 신학 함을 사랑하는 것은, 신학이 나에게 존재의 정체성을 알게 해주었고,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형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을 나눌 줄 알고, 궁핍에 처해도 비굴하지 않으며,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났던 감신 선배들의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예언자 정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영혼을 팔지 않는 진정한 경건, 이러한 감신의 정신을 사랑하고...(*김재은, 212쪽)
나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충분히 사랑받고 살았다고 느낀다. (*곽은주, 365쪽)

- 나도 그랬지. 신학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사막에서 생수를 마신 것 같은 시원함과 해방감이었다. 그리고 내 가치관을 형성했고 푯대를 제공했다. 감신의 학풍이 나에게 맞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감신 안에서 참 많이 사랑받으며 자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머니 감신이란 말이 참 맞다.


'들을 귀'가 없을 때 우상은 이내 우리를 지배하고 만다.(중략) 행여 VOP가 많은 소음 속에 파묻힌 소리가 아니라 깊은 심중에 울리는 음성으로 존재하길 기대한다. 그 시절, 시대를 거스르려고 한 떨리는 목소리처럼. (*송병구, 431쪽)
목회자가 할 일은 현장에서 자신의 신학을 선포하고 회중과 소통하며 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라고. (*이세형, 371쪽)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가 관심을 갖고 일생의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 결국 인간문제, 사회와의 관계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방현섭, 568쪽)

- 감신을 다녔지만, '방송국을 다녔다'고 얘기해도 이상하지 않다. '예언자의 소리'는 내 고민의 화두였다. '소통'이라는 말은 내가 놓지 못하는 단어였다. 방송국에서 했던 고민들이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의 거름이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싸우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그 어떤 폭력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신앙으로 행동하게 했다. 그러므로 당시 가장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고 장기집권을 통해서 독재를 정당화하는 유신헌법에 반대한 이유도 어떠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신앙 때문이었다. (*조화순, 203쪽)
지금도 변선환 교수님의 억센 이북 악센트로 외치던 독일어 발음이 귀에 쟁쟁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No(Nein)'할 수 있어야 한다..." (*손호익, 404쪽)

- 이것이 예언자의 소리겠지. 나는 앞으로 이렇게 신학하고, 신앙하고, 살아가야겠지. 


홍현설은 감신이 이 땅에서 민족과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예언자'와 '전도자'이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을 교가에 담았다.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사명과 교회를 위한 전도자의 봉사야말로 감신이 추구하는 신학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말이다. (*이덕주, 감신 교가 이야기, 45쪽)


난 그래서 감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