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J와 카페에서 열심히 말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이 "저기..죄송한데, 너무 신경쓰여서 일을 못하겠거든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더 자리에 앉아있기 민망해서 바로 나왔지만 나는 괜히 분한 마음에 "아니, 카페에 떠들러 오지 공부하고 일하러 오나? 그럼 도서관을 가지?"라며 비죽거렸다. 그 말을 듣던 J는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는 것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라고, 그냥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의 말이 맞다. 싸우는 소리를 듣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다. 영화 [대학살의 신]에서 4명의 인간은 1시간 넘게 말로 싸운다. 40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화면 속 그들에게 "그만들 좀 해라~지겹다."라며 말을 걸고 있더라.
그들의 싸움 기술, 즉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비꼬기, 과장해서 되묻기, 악쓰기, 울기, 무시하기 등은 대단히 공감가는 모습인 동시에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초반에는 각 인물들의 말하는 내용이나 태도를 보며 '저렇게 하니 상대방이 화가 나지. 이런 태도를 취하면 상황이 쉬워질텐데'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어느 싸움도 유치하지 않은게 없고, 당사자가 되어 보면 어떤 싸움도 치열하지 않은 게 없으므로.
가만 보면 어른들 싸움이 더 유치하다. 상대적으로 나이를 먹을 수록 방어기제를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하고싶은 말 못하고 말을 빙빙 돌리거나, 상대가 한 말을 꼬아서 듣거나, 모든 비판을 '내 존재를 무시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기선 말다툼으로 끝나지만, 이런 감정싸움이 한 순간에 고소, 폭행, 살인, 전쟁이 되는 것 아니겠나.
어찌할꼬. '한번도 상처입지 않은 것처럼' 타인을 대하는 것은 정말 꿈같은 얘기일까?
정작 막대기를 휘두르고, 거기에 맞아 이가 두개 부러진 아이들은 다시 만나 잘 놀고 있는데, 왜 어른들은 자신의 존재를 아이들에게 투영해서 싸우고 있느냔 말이지.
본질,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게 본질이 아니잖아! 본질은 아이들 싸움이야." 그러나 진짜 본질은 아이들 싸움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라고.
그런 맥락에서 싸움의 대부분은 그 원인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보통은 나 자신에게 있지. ㅠㅠ 반성하게 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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