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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해어화 (2016, 박흥식)

by Ivyueun 2016. 7. 31.


2016-몇 번째 영화인지 모르게뜸•_•
<해어화>

1940년대, 정말 할 말 많은 시대가 아닐까 싶다. 봉건사회가 몰락하고 전세계적인 변화의 물결이 빠르게 유입되던 시대. 제국주의와 전쟁, 신문물과 새로운 사상. 워낙 격변의 시대인만큼 이야깃거리도 많고 특유의 패션과 거리 분위기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항상 흥미롭다.

그래서 워낙 관심이 가던 영화였다. 당대의 최고 기생 출신이면서 대중가수가 된 두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라 했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 시대에 민중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길을 택한 연희(천우희)와 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해 기생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소율(한효주). 어두운 상황속에서도 분명 존재했던 노래와 예술, 그리고 옛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여성의 이야기라...여러모로 흥미로운 소재였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지금은 아쉬움 투성이. 세트와 의상에 신경 쓰는 만큼 캐릭터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인물들의 감정선과 대사는 툭툭 튀어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아쉬운건 캐릭터와 스토리다. 주인공 소율은 전통음악인 '정가'에 출중하고 예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으로, 그의 연인 유연석(극중 이름도 기억안남;)은 유학파 지식인으로서 민중들이 듣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천재 작곡가로, 연희는 소율의 절친한 친구이며 기생이지만 대중가수로의 길을 선택하는 선구적인 사람인듯 나온다. 그렇게 설명하기는 하는데...그런데....영화를 보다보면 이 캐릭터들은 온데간데 없다는게 함정. 이 영화는 결국 주인공 소율이 가수로서의 인정과 사귀었던 남자를 빼앗겼다는 분노로 인해 가장 가까웠던 친구에게 복수하지만 끝내 본인의 삶도 망가뜨리고 마는 치정극으로 끝나버렸다. -_ㅠ

영화 중간에 "여자들이란..."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그것이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라고 본다. 뭐,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지난 번에 본 <도리화가>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어떻게 주인공 여성 캐릭터를 이리 망가뜨려 놓을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편 하지원이 출연했던 드라마 <황진이> 속의 캐릭터들이 생각나는데, 그 드라마 속 기생들은 화대랍시고 돈을 주며 마음과 재주와 몸을 사려는 남성에게 삶을 의존하지 않았고 오히려 권력자를 비웃는 자들이었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서만 예술인의 자존심을 버렸고, 그것에 가슴아파하며 절벽 위에서 마지막 춤을 추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는 "여자들이란..."이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없고, '기생' 이전에 '한 인간'을 마주하며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어화>의 감독은 자신이 그려낸 인물들에 대해 존경하지도 연민을 갖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럼 관객들은 당연히 공감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2016.7.30. zay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