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원고
세월호 참사 1주기 “기억을 위한 기도회”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중 하나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잊혀서는 안 되는 것’의 존재를 깨닫고 기억을 위한 투쟁을 시작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예배하는 것도 본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한 투쟁이었듯, 그저 망각의 강 위로 떠내려가게 놔둘 수 없고 끝끝내 붙들어야만 하는 그런 사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제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제기된 의혹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내 가방에 매달린 작은 노란 리본은 때가 타고 닳아서 몇 번을 교체했지만 그 커다란 세월호와 9명의 실종자는 아직 그 날의 그 바다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두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진실을 감추려는 누군가에 의해 잊혀서도 안 되고, 세월의 흐름에 휩쓸려 쉽게 잊어서도 안 되는 세월호 참사. 그래서 우리는 망각을 종용하는 세상에 맞서 기억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감리교시국대책위원회와 감리교신학대학교 총학생회가 함께 주관한 ‘세월호 참사 1년 - 기억을 위한 기도회’는 그러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4월 16일 전후로 그 주에는 유독 비가 많이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기도회를 진행한 13일에도 비가 왔습니다. 기도회에 참여하겠다고 했던 사람들 중 몇몇이 함께 가기 힘들겠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럼에도 기도회가 진행될 안산 합동분향소로 향하는 버스가 4대나 되었고, 그 중 3대가 감신대 학생들로 채워졌습니다. 기도회를 준비한 기획팀이 각각 버스에 나눠 올라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세월호 참사의 맹점을 상기시키고 마음을 모으는 찬양과 기도를 함께 드렸습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조금 더 숙연한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여토록 하기 위함이었지요.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곧 알게 되었습니다. 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 근처에 도착하자 곳곳에 달려있는 현수막과 리본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왔는지를 온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차에서 내려 정면에 있는 커다란 분향소를 마주한 이후로는 누구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비바람은 더욱 거세져서 그곳에 모인 200여명의 사람들은 우비를 입거나 작은 천막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닥에 앉을 수도 없고 시야는 어둡고 순서지도 빗물에 다 젖어버리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듯 각자 들고 있던 초에 불을 붙이며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길가는 밴드’의 여는 공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찬양,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기도와 진실규명·인양촉구를 위한 기도, 추모 몸짓과 시 낭송,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 김현동(故김다영 아버지), 이남석(故이창현 아버지)님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두 분의 잠긴 목소리에서, 온 몸에서, 삭발된 머리에서 처절한 증언이 전해져 왔습니다.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으로써 이은선 교수가 <고통 속의 빛-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습니다.
1부 기도회 후에는 홍보연 목사의 인도를 따라 걷기 기도를 드렸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분향소를 향해 걸으면서 잊혀질 뻔 했던 세월호의 아픔을 다시금 마음에 담았고, 분향소에 놓인 영정사진들을 바라보면서는 끝까지 잊지 않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순간, 참 아팠습니다. 1년이 지나 흐릿해진 줄 알았는데 아픔은 여전히 현실이었습니다.
잊혀진 줄 알았으나 아픔은 여전히 현실이라는 것, 이것이 ‘기억을 위한 투쟁’을 지속해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날의 기도회는 그 몸부림 중 하나로 기록될 테고, 약속을 지킬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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