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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일상잡다

두더지와 잘 지내기

by Ivyueun 2019. 5. 28.

"기분이란 녀석은 힘이 세다."

기분이 영 안좋다 싶으면 혼자 있는게 제일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더지와 언쟁이 오간 후, 아무래도 걸어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와 걸었다. 어차피 이 상태로 잠을 청해봤자 가슴만 울렁거려 소리라도 한 번 더 지르겠지. 그러고 나면 후회하겠지. 그럴바에는 걷자, 에너지를 쓰자, 하며 다리를 열심히 움직였다.

 

그렇게 오천보 쯤 걸었다.

나는 두더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나. 두더지와 나는 같은 미션을 가지고 '협업'할 때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물론 싸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을 사이에 두고 있을 때 가장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미션, 과제, 일, 과업, 사역, 활동, 뭐 그런거. 그런게 없을 때 우리 둘은 소통에 애를 먹었다. 예컨대 내 감정 상태를 이야기할 때.....그래, 그 미묘한 감정 세계를 논할 때는 늘 벽에 부딪혔던거 같다. 감정은 설명할 수 없는 거니까. 그냥 같은 공간에서 그 공기의 무게와 떨림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것, 나는 혼자가 아니고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내면에서 어떤 진폭의 흔들림이 벌어진다해도 안전하다는 것, 그런 확신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두더지와의 관계에서는 대부분 실패했다.

두더지와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협업'하면 된다. 괜히 그와의 관계에 감정을 끌어들이지 말자. 그건 그와의 관계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 라고 늘 생각하지만, 살을 맞대고 지내다보면 자꾸만 그 다짐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 역시 내가 최대한 상처받지 않고자 하는 방어태세일뿐,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가능하면 혼자 있고 싶지만, 오늘은 저녁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냥 걷고 싶은데, 말을 하고 웃어야 하고 손을 움직여야 한다. 오늘 집에 무사히 돌아갈 때까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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