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中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에 대한 의미 상실. 그리고 우울증.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어떤 의사들에 따르면, 최근에 발견된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은 인간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이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집중하고, 자고, 먹고,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는 능력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물질이 아예 없으면, 인간은 절망, 비관주의, 자신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느낌, 과도한 피로, 불안, 결단력 결여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완전한 무기력 상태, 나아가 자살에 이르는 만성적인 우울에 빠져들었다.]
그래, 호르몬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나도 정신과에 가서 약을 타오면 될 터였다. 그러나 자주 찾아오는 두통에도 약을 먹지 않고 버티려 하는 내가 쉽게 정신과에 갔을리 만무하다. 약이 아닌 다른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무기력증, 열정 없음, 우울증, 존재의 의미 상실에 대한 이유와 해결책을.
그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그래, 죽음에 관한 책이라고 했지.
-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설정하였다.
삶의 의미를 상실한 젊은 여인 베로니카는 어느 날 죽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나 '빌레트'라는 정신병원에 옮겨지게 된다. 그러나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해 그녀의 심장은 크게 손상되었고 앞으로 일주일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자각은 그녀를 변하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려 애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이것은 죽음을 선택하기 전까지의 그녀의 삶. 그리고 나의 삶.
[베로니카는 모든 것을, 특히 자기 속의 수없이 많은 베로니카들, 매력적이고, 끼로 넘치고, 호기심 많고, 용기 있고, 언제든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어 있는 그 베로니카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온 삶의 방식을 증오했다. ……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하루하루가 지겹도록 똑같았던 건 바로 내가 원했기 때문이라는 걸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아마도....."]
베로니카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해서야 자기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후회한다.
도대체 우리의 삶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그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부인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원하죠. 그건 내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사람과 닮기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그건 신경증, 정신장애, 편집증을 유발시켜요. 자연을 왜곡하고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 똑같은 잎은 단 하나도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부인은, 부인이 다르다는 걸 미친 걸로 생각하죠. ……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체는 비트리올-아메르튐(우리안의 열정을 사라지게 하고 우울증을 발생시키는 독)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죠."]
자신을 잃어버린 삶은, 곧 죽은 삶이 된다. 숨을 쉬고 일을 하고 있지만 "이건 사는게 아니야" 라는 고백만이 입에 맴돌고, 뒤이어 무기력증과 우울증, 열정 없음의 늪에 빠져들어 허우적대는 것이다. 이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으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작가는 꼬집는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라는 여성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난 그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교본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살라고 충고할 거야! …… 네가 산다면, 신께서도 너와 함께 살리라. 네가 위험을 무릅쓰길 거부한다면, 신께서도 하늘로 물러나 철학적 공론의 한 주제로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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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내게 삶을 주셨다. 존재를 주셨다. 하지만 오랜 시간 창조된 본래 모습의 나 자신이 아닌, 세상의 요구에 만들어진 나의 이미지를 살고 있었다. 그래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건 사는게 아니야.' 그리고 깊은 우울증이 찾아왔다. 삶이란 의미 없어 보였다.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나 하느님은 내가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진정한 나를 찾기를 바라셨다. 그렇게 되면 살아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그 사랑과 즐거움, 존재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게 사는거지.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 아닌가? 나 역시 내 삶이라는 음악을 저토록 열광적으로 연주할 수 있길 바라는데, 난 내 영혼을 어디다 내팽겨쳐버린 것일까?"] 난 지금까지 내 영혼을 어디다 내팽겨쳐버린 것일까. 이제 나는 간절히 바란다. 나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를. 창조 때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축제를 즐기기를. 나 자신을 사랑하기를. 내 존재를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네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삶을 즐겨라.
하느님께서 네게 주신
태양 아래 덧없는 나날들을.
2009.09.20. Flea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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