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1일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 기도문_ by. 오스칼네 고양이
애통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이 땅에 태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죽임당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여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곳이 나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프기 때문이고, 내가 두렵기 때문이며, 한편 그 수많은 피흘림을 보면서도 마치 남 일인것처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그것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시대와 장소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작년 이 곳에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내가 걸었던 길을 걸었을 한 여성이 여자라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그제서야 이 모든 죽음을 나의 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여자라는 이유로 죽음으로 내몰린, 생명을 강탈당한 이들이 그렇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 애통해하십시오. 하나님, 당신이 아파야 마땅합니다.
나는 당신께 고발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나는 마녀라고 불렸습니다. 마른 가지를 불에 던져 살라버린다는 성서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나는 불에 태워졌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죽기도 했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결혼 계약 전에 아이를 가졌거나, 남편이나 아버지와 싸웠거나, 내 직업을 갖고자 했거나,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했거나, 사회를 떠나 혼자 살고자 했거나, 동물과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이니까, 아담을 죄짓게 한 이브의 후손이라는 교회의 말에 힘입어, 세상을 어둡게 하는 마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죄목으로 살해당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불에 탈 때 내던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 하나님, 마녀사냥으로 죽임당한 이들의 소리를 들으소서.
또 다른 신의 이름으로, 전통의 이름으로, 명예라는 이름으로 나는 가족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몸을 가리지 않아서,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고자 해서,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죽이면서 내가 '명예'를 더럽혔다고 말합니다. 누구의 명예를 말하는 것입니까. 여성인 나에게는 내 몸에 대한 권리조차 없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내 권리를 빼앗아 갔습니다. 여성은 성욕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나의 생식기가 잘리워졌고, 그렇게 나와 내 벗들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 하나님, 명예살해와 여성할례로 인해 죽임당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소서.
나는 전쟁 중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노예로 끌려갔습니다. 남성의 성욕을 채워 전력을 상승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수많은 이들에게 강간당하고 죽임 당했습니다. 내가 여성인 이상, 나는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일본군 성노예이며, 한국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고 죽임당한 베트남 여성이자,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어느 미군에게 살해당하고 생식기에 우산이 꽂힌 채로 발견된 '윤금이' 입니다.
- 하나님, 이들의 애통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멕시코 연쇄살인 사건의 400 여명 피해자 중 한 사람이며,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죽은 10명의 여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있었습니다. 그 날 나는 친구를 만났고, 화장실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난.
2017년 5월11일. 이곳에 있는 나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살아 있습니까?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까? 아니, 내가 여성이기에 이것은 모두 나의 죽음입니다. 그런에도 하나님, 애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저,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 하나님,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다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당하는 이들이 없게 하소서.
이제 우리 잠시 눈을 감고 각자의 고발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위협받았던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소하거나 묻어둘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사건들은 고발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눈을 감은채로)
우리는 이렇게 눈을 감고, 어두운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무방비로 서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16년 5월 17일, 강남역의 한 화장실에서 영문도 모른채 죽임당한 그녀가 마주한 것이고 이전의 수많은 여성들이 마주한 어두움입니다.
이 어두움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미 그 죽음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함께해주십시오. 어둠을 이기는 빛을 우리에게 보이신 예수를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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