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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쓰거나 말하거나

여자가 무슨 목사 #8. 이제 사모라는 말은 쓰지 맙시다.

by Ivyueun 2018. 3. 15.



평화교회연구소 웹진에 오랜만에 글을 썼다. 여자가 목사되기 진-짜 어렵다! 에잇.



​#8. 이제 ‘사모’라는 말은 쓰지 맙시다.

3주 전 즈음이었을 거다. 오랜만에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엄마의 전화에 그러자고 대답하고, 내가 두 분(엄마와 아빠)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가겠다고 했다. 그 날은 주일이었고 부모님은 교회에 있었다. 그 교회는 내가 태어난 후 100일 되던 날부터 만 20년 동안 다녔던 곳이어서 오랜만에 고향 같은 동네, 고향 같은 교회에 간다는 게 설레기도 했다.
교회 로비에 앉아 기다린 지 40분쯤 지났을까. 지하에서부터 벅적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인들이 한 두 사람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도 밝은 웃음을 띠며 올라왔다. 윷놀이 대회를 했는데 상품을 탔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봤던, 이제는 각자의 세월을 얼굴에 담은 반가운 권사님, 장로님도 밝은 얼굴로 올라왔다. 나는 늘 그래왔듯 그들에게 다가가 나를 소개하며 인사했다. 엄마가 옆에서 내 인사를 도왔다. 안녕하세요, 저 오스칼이예요. 여기 우리 첫째 딸이예요, 오랜만에 봐서 못 알아보시겠죠? 진짜 오랜만이네, 잘 지내고 있지? 오스칼 왔구나, 전도사님 오셨네 등등. 반가운 인사가 오고가는 가운데 나를 당황하게 만든 ‘그 단어’가 들렸다.

- 아이고, 사모님 오셨네.
- 이제 사모님이잖아. 이름 부르면 어떻게 해. 사모님이라고 불러야지.
- 목사님은 같이 안 왔어? 왜 혼자 왔어?

나는 몇 해 전 결혼을 했고, 배우자가 목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종종 나를 ‘사모’라고 지칭한다는 것, 그것이 교회 내의 관례처럼 여겨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자란 교회 어른들에게 ‘사모님’ 소리를 듣는 것은 익숙치 않았다. 내가 20살 되던 해 신학교에 입학하고 사역지를 찾아 간다며 이 교회를 떠난 후, 가끔 찾아올 때마다 그들은 나를 계속해서 친근하게 이름 불러주거나 혹은 ‘전도사님’이라고 불러주었던 것이다. 이름 불러주시는 건 감사했고, 전도사라 불러주시는 것은 민망했지만 교회 안에서 맡은 직분이니 무겁게 들었다. ‘사모’는 내 이름도 직분도 아니고 내가 남편과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들을 때마다 당황스러운 단어인데, 교회 어른들은 그것이 나를 ‘높이는’ 호칭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겐 ‘난 대체 누구인가’를 묻게 하는 혼란스러운 단어일 뿐이다.


지난 주에 나는 목사안수후보자 자격으로 교단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다녀왔다. 초대 공문에 ‘반드시 부부 참석’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도 같이 가자 했다. 목사 안수 후보자 세미나에 대체 왜 배우자까지 참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성 전도사에게도 배우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굳이 함께 갔다. 과연 잘 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배우자에게는 명찰이 발급되지 않았고 발언권도 없었고 설문지를 작성해서도 안 되고 자기소개를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자’로 취급할 거면서 왜 부부를 초청한 것일까. 앞으로 ‘그림자’역할에 충실하라는 의미였을까?

프로그램 중 <선배와의 만남>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룹토의 시간에도 배우자가 동석했는데, 처음 제기된 대화주제는 ‘사모의 역할’이었다. 사모의 역할이라니. 그게 지금 발언권도 없이 그림자처럼 앉아있는 여/남 배우자들 앞에서 할 소리인가? 그 말 많던 내 남편도 한 시간을 꼼짝없이 자기소개도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물론 그는 대화의 주제인 ‘사모론’에서는 예외였다. 그는 사모가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는 ‘전도사님 남편’이었고, ‘사부’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는 이유로 단 한번 불리지도 않은 채 잊혀질 판이었다. 그러나 곧 상황은 역전되었다. 사모론을 듣던 내가 참다못해 이런 말을 던지고 난 뒤부터였다.

- 이 자리에 여성 전도사도 저를 포함해 두 명이 있고, 맞은편 남자 전도사님의 부인되시는 분은 목사님이라고 하시니까 여성 목회자가 세 명이 있는 건데요. 제가 학부 때부터 ‘사모론’은 숱하게 들었습니다만, 도통 ‘사부론’에 대해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사모론/사부론’보다는 ‘부부목회자’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더 많은데, 그 얘기도 좀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제 남편은 목사인데…
- 아니, 목사님이셨어요?

그때부터 내 남편은 지도목사가 가끔 의견을 묻기도 하는 ‘목사님’이 되었고, 나는 갑자기, 정말 황당하게도 ‘사모’가 되었다. “아이고, 사모님이셨구나. 저렇게 훌륭한 목사님을 남편으로 두셨으니 정말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상황을 나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무튼 내가 그 말을 한 뒤부터 몇몇 전도사들은 배우자를 호칭할 때 ‘사모님, 혹은 사부님’이라고 하긴 했으나 그것은 소수였고, 프로그램 내내 전도사의 배우자는 ‘사모’로 불리워졌다. 어떤 강의시간에는 프린트물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심방 시 사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심방 시 사모는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되셔야 한다.

특별히 목회 속에서 사모님의 자리에 대해 조금 생각해봅시다.
목사에게 시집 온 것 때문에 사모(the paster’s wife)인데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이 있습니다. 사모라는 지위(status)가 아닌 위치(position)가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리는 명예를 뜻하는 자리도 아니고, 영광의 자리도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고난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분명 “사모의 영향력”은 교회에 큰 방향이 됩니다. 사모님은 교회 안팎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게 은근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남편에 대한 영향력입니다. …
1) 아내는 절대로 남편의 메시지를 비판하지 말라. (비판을 혹시 받았다면 좋은 점을 지적해 주어라)
2) 사모는 교인들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목사에게서 캐내려 하지 말라.
3) 사모는 주일 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라.
4) 사모는 남의 이야기를 주의해서 잘 들어야 하고, 조언하는 일이 있을 때 급하지 말아야 한다.
5) 사모는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야 합니다.

이것을 읽고 나서 강사는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모님들, 나대서 좋을 거 없어요.”

그 자리에 있는 여성 전도사들을 마치 없는 존재로 만들고, 목회자의 배우자를 ‘사모’로 통칭하고, 함께 온 배우자들을 그림자처럼 취급하고, ‘사모론’이랍시고 가르치면서 사모가 마치 명예를 탐하고 남편을 못살게 굴고 교인들의 정보나 빼내려 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이런 저급한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목회자를 내조하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라고? 남성 배우자에게는 왜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가. 사모가 기능인인가?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에서 분명히 월급을 책정하여야 할 것이다. 사모가 직분이 아니고 남성 목회자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사모의 역할’따위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단 한번 등장하지도 않는 ‘사모’를 왜 그렇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제안한다. 이제 ‘사모’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사모’라는 말은 이미 교회 내 성차별적 구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배우자를 ‘사모’로 통칭하는 관습이 남아있는 한, ‘여성’목회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사부’는 교회 안에서 차라리 없는 게 좋을 존재가 될 것이며, 순종과 내조로 보이지 않게 조력하는 여성상과 사모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남성 목회자의 배우자는 이중 구속에서 벗어날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 그럼 사모님을 사모님이라고 안하고 뭐라고 불러?
- 다른 단어로 부르기엔 어색하기도 하고, 입에 안붙기도 하고, 듣는 사람도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물론이다. ‘사모’가 익숙한 만큼 우리도 성차별적 문화에 그만큼 익숙해져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모’를 운운하며 새로운 단어를 고민하는 노력이 없다면 결단코 새로운 세상도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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